창원궁중민화협회의 창립기념 전시회를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그동안 창립과 기념전시회를 준비하며 열정적인 작업을 하신 회원여러분의 노고에 감사와 축하를 드립니다.

궁중민화는 한 민족이나 개인이 오랜 세월동안 전통적으로 이어온 생활풍습을 보여주는 그림이라고 생각합니다.
궁중문화의 명예와 우아함도 돋보이지만, 서민들이 쉽게 접하는 동식물과, 생활 주변을 아름답게 꾸미고자 하는 솔직함이 자연스럽게 드러나 있어 친근함을 느낍니다.

궁중예술의 역사와 생활양식, 정서가 함축되어 있는 우리민화를 더욱 발전시켜 전통문화를 계승하는데 “창원궁중회화협
회”가 앞장서 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귀 협회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조선시대의 전성기는 크게 전기와 후기로 나눈다.
전기는 나라의 기틀을 마련하고 국가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면서 미래의 이상향을 추구했던 세종 연간이다.
세종은 위로는 6진을 개척하고 아래로는 왜구를 소탕하여 국경을 안정시켰으며, 안으로는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고 백성
들을 위한 한글을 창제하였다. 이러한 조선의 희망은 안견의 [몽유도원도]에 잘 표현되어 있다.
[몽유도원도]에는 태평성대, 이상세계를 찾고 구현하는 주체가 선비라는 명확한 개념이 들어가 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조선의 흐름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특히 전통전인 우호관계였던 명나라가 망하고 오랑캐라고 여겼던 청나라가 들어서자 조선은 크게 동요했다. 하지만 동시에 조선이 곧 유학과 철학의 중심이라는 주체의식이 발현된다.
이 결과로 조선의 산하를 표현한 [진경산수화]가 발전하여 조선 후기 문화의 꽃을 피운다.
오랑캐라고 여겼던 청나라는 쉽게 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17세기에 들어서면서 전성기를 누린다. 청나라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복수를 꿈꾸던 조선에서 변화의 바람이 분다. 청나라를 통해 선진문물이 들어오면서 조선 내부에서는 호락논쟁(湖洛論爭)이 일어난다.
17세기 말부터 18세기 말까지 진행된 호락논쟁은 인간의 본성과 물성에 관한 것이지만 외부적으로는 청나라를 인정할 것인가, 혹은 인간의 욕망을 수용할것인가 하는 정치사회적 문제였다.
이 시기 청나라에 다녀온 많은 선비들은 연행문이나 증언, 경험을 통해 실상을 알렸고 동시에 고증학이나 서양문명이 수용된다.
특히 연암 박지원이 사신단을 따라 청나라를 여행하고 쓴 [열하일기]는 조선에 큰 반향을 일으킨다.

조선의 선비들은 유학이나 철학은 조선이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을 가졌지만 경제나 과학, 백성들의 삶은 뒤떨어졌다고 여겼다. 이러한 관점을 가진 사람들을 흔히 실학파, 북학파라고 부른다.
연암 박지원은 서양문명이나 발전된 청나라 문화를 수용함에 있어 ‘법고창신(法古創新)’의 관점을 내세운다. 법고창신은 그야말로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創造)한다는 뜻으로, 옛것에 토대(土臺)를 두되 그것을 변화(變化)시킬 줄 알고 새 것을 만들어 가되 근본(根本)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 시기 김홍도, 강세황, 이명기, 강희언 같은 선비화가나 화원들은 서양화법을 수용해 여러 가지 조형적 실험을 한다. 특히 단원 김홍도는 서양화법을 적용한 용주사 후불탱화를 그리고, 청나라의 [다보각경도]를 수용하여 조선의 방식에 맞는 [책가도]를 창안한다.
부귀영화, 불로장생의 내용을 담고 있는 중국의 장생도를 수용하여 [십장생도]로 완성시키고, 부귀영화의 상징인 모란그림은 생명의 만개라는 인문학적 내용을 담은 [궁중모란도]로 재창작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궁중회화는 이 시기에 청나라로부터 수용하여 ‘법고창신’을 통해 조선의 방식으로 재창조한 것이다.
영. 정조시대는 백성들의 욕망을 적극적으로 발현되었다. 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프랑스 시민혁명, 명예혁명, 미국의 독립전쟁 따위가 일어나는 세계적인 현상이었다. 
[십장생도], [책가도], [궁중모란도], [화조도], [연화도], [수복도] 따위가 화려하고 진한 채색으로 그려져 궁궐을 장식하면서 태평성대의 꿈을 키워나갔다면 백성들은 이를 욕망의 구현, 잘 먹고 잘 살고자하는 꿈과 희망을 투영했다.
궁중회화에 부귀영화, 건강장수, 출세, 자손번성, 화목, 액막이, 행복과 같은 내용을 결합시킨 속화(俗畵), 민화라고 불리는 그림이 백성들의 삶에 파고들어 유행했다.
고급미술이 대중화하는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수준의 하향평준화가 일어난다. 그렇지만 속화의 형식적 토대를 만들어주는 궁중회화가 있었고, 동시에 지식인들의 인문학적 내용이 뒷받침하고 있었다. 그러하기에 조선 후기의 민화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후 세상은 몇 번이나 바뀌었고 한반도에는 제국주의의 탐욕과 전쟁의 포화가 지나갔다.
일제강점기를 통해 조선은 부정되었고 극복의 대상이 되었다. 동시에 철학과 뿌리를 잊은 사람들은 오로지 생존하기
위해 약육강식, 부정부패, 인간타락이라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인간존중, 공동체의 공생공영을 추구했던 조선시대의 인문학적 가치는 사라지지 않았다. 10여 년 전부터 부활한 궁중회화는 역사적 유물이자 우리민족의 가치가 총화된 그림이다.

궁중회화는 우리민족의 사상이 담겨있는 그림이자 동시에 우리그림의 교과서이다.
이 그림 속에는 전쟁과 살육이 없고 물질적으로도 풍요로운 태평성대라는 백성의 희망과 꿈이 담겨있다. 또한 이를 구현하기 위해 인간존중과 호혜를 바탕으로 한 자기절제와 희생이라는 인문학적 가치가 녹아있다.

궁중회화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우리민족의 자랑스런 그림이다. 진하고 화려한 채색, 섬세한 묘사, 8m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 보편적인 조형원리는 세상 모든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창원지역의 우리그림 작가들은 오래 전부터 서양화, 민화, 궁중회화를 창작해 왔다.
그림에 관한 여러 미학과 화법을 배우고 수많은 전시회를 열었다. 이번 궁중회화 창립전은 이러한 여정의 종착점이자 새로운 출발점이다.
시대의 흐름은 빠르게 변하고 우리그림에 대한 대중들의 요구는 점차 커지고 있다. 궁중회화 협회를 만든 것은 이러한 시대적 흐름이나 요구에 부응하는 일이다.

모임을 만들어 창작활동을 한다는 것은 사적 영역에서 공적인 영역으로 창작활동을 넓히는 것이다. 당연히 사회적 책임감을 동반한다.
미술과 같은 예술은 대중의 미감을 뒤좇는 것이 아니라 한 발자국 앞서 간다. 부단한 창작과 다양한 대중과의 소통이 있지 않고서는 자칫 자기만족이라는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
지역미술문화에 활기를 불어넣고 대중들의 다양한 문화적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그러한 모임으로 발전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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